강아지 고양이 이야기

순한 고양이도 삐지면 무섭다

놀자! 2022. 2. 23. 20:13

고양이 관점

나는 레옹이다
아홉 살 먹은 페르시아 수컷이다 나는 평생 엄마에게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랐다.
잘 때는 엄마 옆에서 꼭 붙어서 자고 엄마의 이불은 내 것이며 원래 고양이의 서식처는 이불이므로 나의 서식처는 엄마의 이불이다
나는 모든 것을 이불에서 해결한다 잠을 자고 그루밍을 하고 엄마한테 쓰다듬을 받고 가끔 헤어볼을 토하고 재채기를 하면서 콧물과 침을 줄줄 흘리는 힘든 때에도 엄마의 이불위에서 다 힌다
그런데 어제 엄마한테 아주 심한 배신을 당하고 마음의 상처를 입었다

엄마의 입장

나는 고양이 레옹의 엄마입니다
그제 어제 이틀 간 수면 부족으로 많이 힘이 드네요
어제는 하루에 이불 빨래를 두 번 오늘도 하루에 이불 빨래 두 번.
저는 원래 고양이 알레르기가 있어요
그래도 약도 없이 고양이를 멀쩡하게 키워내는 거는 이게 바로 사랑의 기적이죠
엊그제 새벽에 고양이가 헤어볼을 토하고 그후 재채기와 콧물 침을 흥건하게 흘린 축축한 이불에서 자고 일어나니 얼굴이 퉁퉁 붓고 몸은 무겁고 축 늘어져서 하루 종일 컨디션이 안 좋았어요
기운 없어서 이불 빨래를 못 하고 그냥 잘까 하다가 재채기와 콧물. 얼굴 붓는 걸 참을수가 없어서 기운을 쥐어짜내서 결국은 밤 12시에 이불과 베개와 파자마를 모두 갈아치우고 자게 됐지요

그런데 고양이가 또 제 얼굴 앞으로 와서 재채기를 해대지 뭡니까
그래서 나가라고 쫓아냈지만 당연히 안 나가죠.
그래서 자다가도 재채기 소리가 들리면 나가라고 등을 떠밀었어요
그래서 밖에서 자고 있는 줄 알았더니 아. 글쎄.
새벽에 들어와서 제 손가락을 꽉 물고 도망을 가더군요 저는 자다가 비명을 지르고 일어났지요

오늘은 쓰다듬어줘도 골골송도 안 부르네요
레옹도 토하고 나서 몸이 힘들어서 그랬던 건데 엄마가 화를 내니까 제딴엔 많이 서운했나 봅니다
착하고 순둥이인 줄만 알았던 우리 애기가 서운하면 와서 손가락도 꽉 물고 도망갈 줄도 아니 기특하기도 하고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나네요
레옹아 엄마랑 건강하게 오래 살자